하와이 여행을 시작하며
지난해 이맘때, 한참 앓아온 번아웃이 중증을 향해갈 무렵 우연찮게 하와이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출장이었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 발을 딛는 일엔 설렘이 동반되기 마련이다. 다만 그때의 나는 새로움이나 변화를 감당할 수 있는 신체적, 정신적 상태가 아니었다. 온통 세상이 무채색이었다. 피곤함이 앞서 '후배에게 양보해야지'하는 생각을 하던 중, 상담을 해주던 의사의 이야기를 듣곤 마음이 움직였다.
"우울이 사람을 집어삼키는 전형적인 방식입니다. 분명 전보다 여행의 감흥이 없을 수 있고, 그리 즐겁거나 새롭지도 않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변화할 수 있는, 어쩌면 나아갈 수 있는 티켓을 나에게서 빼앗지 마세요. 저는 다녀오시길 권합니다."
이런 이야기였다.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으로 병원을 나와 그 길로 팀장에게 내가 가겠다고 했다. 말을 바꾼 셈이라 후배에겐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언젠가 이 빚을 갚아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스스로 위로했다. 당시 내가 몸 담았던 부서는 출장이 흔치 않았는데, 다른 부서에서 선배가 넘겨 생긴 기회였다. 그 선배는 기뻐하며 내심 내가 갔으면 했다고 연락해왔다. 내 상태가 밖으로 드러났던 걸까. 그렇게 복잡한 마음으로 하와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인천에서 코나로
첫 목적지인 빅 아일랜드의 코나를 가기 위해선 우선 오아후 섬에서 주내선을 탑승해야 했다. 지난해 11월 29일 오후 9시25분 인천국제공항에서 하와이안 항공 HA460편에 탑승했다. 오아후 섬 호놀룰루에 있는 다니엘 K. 이노우에 국제공항까지는 직항으로 8시간 20분이 소요된다. 본래 명칭은 호놀룰루 국제공항이었지만, 2017년 하와이주 초대 연방 상원의원이자 명예 훈장 수훈자인 다니엘 K. 이노우에를 기리기 위해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현지에 도착하면 시간을 거슬러 29일 오전 10시 45분의 하와이를 만날 수 있다. 다니엘 K. 이노우에 국제공항에 도착한 후 코나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주내선을 타면 된다. 주내선을 타면 코나 국제공항까지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현지시간 오후 1시 35분, 역시 하와이안 항공 TBD편을 이용했고 1시간 남짓 지난 오후 2시 24분 코나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코나 국제공항은 하와이의 정취가 잘 느껴지는 비교적 아담한 크기다.
하와이안 항공
"알로하" 비행기에 오르자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머리엔 플루메리아 꽃을 꽂은 승무원들이 인사를 건넨다. 여행의 시작과 동시에 하와이에 온 기분이 든다. 좌석에 앉으면 하와이 음악이 현지 명소를 배경으로 촬영한 뮤직비디오와 함께 흘러나온다. 친환경 어메니티와 담요가 제공되고, 기내식은 두 차례 나온다. 비프 등을 활용한 석식, 빵 위주의 조식으로 구성됐다. 유명한 호놀룰루 파인애플 쿠키와 마우이 맥주를 미리 맛볼 수 있다. 인천을 오가는 노선인 만큼 한국인들을 배려해 볶음고추장 튜브도 같이 준다.
하와이안 항공은 94년 간 한 번도 인명피해나 사고가 없었던 항공사로도 유명하다. 어메니티 키트에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든 파우치, 대나무 칫솔을 사용하는 등 지속가능한 환경을 생각하는 모습도 내겐 플러스 요소였다. 하와이 로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노호 홈'과 협업해 제작했다고 한다. 핸드·바디로션과 립밥 등은 하와이 로컬 스킨케어 브랜드 '롤리이'가 만든 것이다. 자원낭비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추가 어메니티는 요청할 때에만 이용할 수 있다.
하와이 스타벅스 파인애플 텀블러
호놀룰루 다니엘 K.이노우에 국제공항에 도착해 주내선 탑승 수속을 마치고도 시간이 남아 주변을 둘러봤다.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레스토랑과 호놀룰루 파인애플 쿠키 등을 파는 기념품 샵들이 있어 구경하기 좋다. 그 사이에 스타벅스가 눈에 띄었다. 하와이에 가면 하나씩 꼭 사온다는 파인애플 텀블러가 쌓여있었다. 큼직하고 무게가 있는데 표면이 오돌토돌하게 솟아있어 지압효과가 상당하다. 가격은 세금 포함 26.44달러로, 나에게 주는 기념품으로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구매했다. 호텔에 일회용품이 없을 수 있어 텀블러를 지참하라는 공지를 미리 받았기에 이걸 쓰면 되겠다 싶었다. 그 땐 몰랐다. 텀블러가 무려 세개나 생길 줄은….